배기성 갤러리FM 대표 “소나타값으로 이우환의 ‘바람’ 샀죠”
[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김환기, 이우환, A.R. 펭크, 나라 요시토모, 야오이 쿠사마 등 이름만 들어도 입이 벌어지는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들을 미술관도, 재벌도 아닌 전직 은행원이 소장하고 있다면? “동료들이 주식 살 때 그림을 샀다”는 배기성 갤러리FM 대표의 미술품 컬렉션 성공 비결을 알아봤다.
1999년, 배기성 갤러리FM 대표는 은행원 시절 소나타 1대 값으로 그림 1점을 구매했다. 작품에 힘이 넘쳤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역동적으로 표현된 모습에 마음을 뺏겼다고 했다.
“자동차를 사려고 돈을 모으는데 좋은 그림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사진으로 보고 5분 만에 결정했어요. 자동차는 결국 못 샀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이 그림은 이우환의 ‘바람’ 시리즈 작품이다. 이우환은 국내 작가별 낙찰가 총액에서 김환기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때는 사람들이 왜 그림을 사냐고 그랬어요. 우스갯소리로 그랬죠. 혹시 이 그림으로 아파트 1채 살 줄 아냐고….”
그는 운이 좋았던지 은행원 시절 관심을 가졌던 작가들이 지금은 대부분 스타 작가가 됐다고 했다. 이제는 아파트 값이 아니라 빌딩에 견줄 작품들이 즐비하다. 그의 소장품으로는 김환기, 이우환, 황용엽 같은 국내 거장의 작품에서 나라 요시토모, 야오이 쿠사마, 베르나르 부네 같은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40년간 모은 작품은 500점에 이른다. 그렇게 모은 컬렉션으로 그는 지난 2015년 갤러리FM을 열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좋은 작품들을 많이 수집한 비결이 무엇인가요.
“1981년부터 그림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때 미대 후배의 그림을 구매한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당시 5만 원을 주고 구입했습니다. 대학 등록금의 4분의 1 정도 되는 가격이었어요. 대학생이 그 돈을 주고 그림을 사기는 쉽지 않잖아요. 유명 작가도 아니었지만, 후배에 대한 예우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 후배는 선물로 준 것이었는데, 그림은 꼭 돈을 주고 사야 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그래야 작품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니까요. 이후 은행(당시 상업은행)에 들어가서 은행 거래처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갤러리를 찾게 됐습니다. 갤러리와의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 금융 컨설팅도 하고 작품도 1점, 2점 사다 보니 어느새 엄청난 작품 수가 됐습니다.”
수집품 중에 이름만 들어도 엄청난 작가의 작품들이 많은데요. 안목이 놀랍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술품 투자에 성공한 것이지, 그림을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때는 그림이 (미래에) 돈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쉽지 않았어요. 지금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고, 우리나라 작가들도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으니 가치가 높아진 것이죠. 수집 초기에는 김환기 작가의 작품도 몇 백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재테크 차원보다는 일단 그림을 걸어 놓으니까 더없이 좋았습니다. 거래처를 유치하려고 그림을 샀고, 그림이 좋아서 샀고, 결국 거래처도 뺏기지 않고, 수집도 많이 하게 됐죠. 흔히 성공한 사람의 주변을 보라고 하잖아요. 은행 거래처 차원에서 제가 그림을 샀던 갤러리가 국제갤러리입니다. 이제는 세계적인 갤러리죠. 운이 좋았습니다.”
이우환, with winds,162.2cm x130.3cm,1987년 (대표 애장품)
그림 구입 비용도 상당했을 텐데요.
“월급의 40%는 그림 구입에 썼습니다. 옛날 재형저축 금리가 연 20%가 넘었습니다. 동료들은 그 돈으로 주식을 사거나 자동차를 샀는데, 저는 만기가 도래하면 그림을 샀습니다. 자동차를 구입하면 유지비도 상당하잖아요. 그 유지비로 그림 1점을 살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아내에게는 200만 원에 샀으면, 20만 원이라고 10분의 1로 줄여서 얘기하곤 했어요. 그러다 작품이 많아지고, 아내와도 같이 갤러리를 다니다 보니 작품에 대해 알게 되잖아요. 나중에는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그림 수집한 것을 정말 잘 했다고 칭찬했어요. 아내와 같이 갤러리를 다니다 보면 그것이 데이트이고, 미술을 통해서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니 또 좋았고요. 그동안 산 작품들은 그 자체로 우리 삶의 스토리텔링이 되기도 했으니, 그림 수집은 참 행운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소중한 인연의 작품을 소개해 주신다면.
“1991년에 안창홍 작가의 작품을 봤습니다. <부정(父情)>이라는 작품이었어요. 당시 아내가 임신 중이었는데, ‘아들을 낳으면 사랑해 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샀습니다. 당시 가격은 10만 원에 불과했어요. 지금은 가치가 올라갔다 해도 저희는 팔 수가 없는 그림이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작품이니까요. 아들에게 물려주고, 손주에게 물려줘야죠. 만일 그 돈 10만 원으로 그림을 사지 않고 다른 곳에 썼다면 그냥 없는 돈이겠죠. 초보자들은 그림 수집 하면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그저 보기에 좋은 그림이 있다면, 1년 커피 값을 모아서 사라고 얘기합니다. 하루 커피 값 5000원 씩 모으면 1년이면 얼추 200만 원은 되잖아요. 신혼 때 비싼 가구나 가전제품 큰 것을 구입하지 말고 그 비용으로 그림을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요. 요즘 ‘동학개미’다 해서 주식에 투자하는 경우도 많은데, 증시는 변동성이 높잖아요. 또 주식 가격이 오르나, 내리나 매일 가격 체크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집니다. 그림은 보는 것만으로 힐링과 여유를 주잖아요. 예술은 한 분야에 푹 빠져도 손해 볼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전광영 작가의 작품도 상당수 수집하셨는데, 사연이 있나요.
“1998년 우연히 갤러리를 들렀다가 전광영 작가의 작품을 봤습니다. 보통 캔버스에 작업하는데 한지로 작품을 만든 것이 독특하게 느껴졌습니다. 원래 미술품의 생명은 개성이잖아요. 이 작품은 가치가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이 작가가 해외에서 전시를 한다고 해서 함께 갔습니다. 제 안목이 정확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컬렉터들이 전 작가의 작품에 푹 빠져서 디스플레이 비용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보며 ‘이 작가는 뜨겠구나’ 확신했습니다. 이후 꾸준히 컬렉션을 했습니다. 그렇게 수집한 작품이 30점 정도 됩니다. 2000년 이전 가격은 지금의 15분의 1도 안 됐습니다. 100호 작품이 800만~
900만 원 수준이었는데, 현재는 1억5000만 원 이상이죠. 탁월한 선택이었던 거죠. 그때도 이미 컬렉션을 시작한 지 20년 가까이 됐으니 나름 안목이 생긴 겁니다.”
A.R. 펭크,무제,130.3cmx97cm, 2002년 (대표 애장품)
그림 공부는 어떻게 하셨나요.
“우리가 집을 살 때 부동산에 가서 무조건 ‘집 하나 주세요’ 하지 않잖아요. 지역도 공부하고, 시세도 알아보죠.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그림을 사려면 자꾸 그림을 봐야 합니다. 저는 대학시절부터 그림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했고, 주말에는 서울 강남, 삼청동, 인사동 갤러리를 무조건 순례했습니다. 시간과 돈과 열정이 엄청 들어갔습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하잖아요. 한 분야에 하루 3시간씩 10년간 투자하면 1만 시간 정도 됩니다. 저는 하루 5시간 이상은 그림에 투자한 것 같습니다.”
그림 수집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그림을 사고 싶은데 가격이 비싸면 대출을 받거나 할부로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집을 팔기도 했고요. 그런데 5개월 후 외환위기가 왔습니다. 하늘이 도운 것이죠. 반대로 지금처럼 집 값이 올랐다면, 아찔했을 겁니다. 그 당시 3000만 원으로 구입한 작품이 장욱진 작가의 작품입니다. 물론 투자 측면에서 실패한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 그림 투자에서는 1할만 잘되면 성공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저는 80% 이상 성공한 것 같아요. 그림 공부를 열심히 했고, 좋은 갤러리를 만난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관심을 가졌던 전광영·안창홍·이희중·이우환 작가들이 스타가 됐죠. 이수동 작가의 작품도 무명시절에 알게 됐고요. 이렇게 성공한 사례들을 보면 뿌듯합니다.”
그림 투자에서 실패하지 않는 팁을 알려 주신다면.
“제가 처음 그림을 구입하던 당시에는 옥션이 없었어요. 주로 갤러리를 통해 구입했습니다. 나중에는 작가에게 직접 구매한 경우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갤러리를 통한 구입을 가장 추천합니다. 보통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면 전시를 통해 컬렉터들에게 판매하고, 컬렉터는 좋은 작품을 소장했다가 몇 십 년 후 경매사에 의뢰하는 구조입니다. 갤러리는 작가의 작품 중 우수작만을 선별해 전시를 합니다. 그래서 좋은 작품을 구입하기 수월합니다. 나중에 갤러리에 되팔 수도 있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미술품은 작품의 히스토리가 중요한 예술 분야입니다. 누가 소장했었는지, 어디서 전시했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초보자가 작가나 딜러에게 작품을 싸다고 구매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우환, with winds, 91cmx64cm, 1986년 (대표 애장품)
그림을 수집하다가 갤러리를 직접 여셨는데요. 은행 지점장을 그만두고, 갤러리 운영에 나선 이유는.
“2015년 은행 지점장으로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은행을 조금 더 다닐 수도 있고, 다른 직장에 갈 수도 있었지만, 인생 후반기에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미술품을 좋아하는 제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이 갤러리 운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갤러리는 평생직장이잖아요. 갤러리FM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FM 음악을 듣듯이’ 가까이서 부담 없이 그림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비즈니스 차원에서 정직함을 추구한다는 뜻도 담았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소장한 작품을 비롯해 중견 작가들의 전시전 및 직접 발굴한 작가들의 기획 전시를 했습니다. 서수영 작가는 1998년에 처음 잡지에서 보고 좋은 예감을 받았는데, 갤러리 오픈 초기에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만나 우리 갤러리의 전속 작가가 됐습니다. 송은주 작가는 삼나무 회화로 하늘을 재해석해, 기획초대전에서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작가들과 희로애락을 나누고, 미술 교류를 통해 각계각층의 좋은 분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성공한 컬렉터로서, 그리고 갤러리 운영의 꿈을 이루셨습니다. 앞으로 또 도전하고픈 목표가 있으신가요.
“옛날에는 프랑스 작가들이 추앙 받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 미술이 급부상했습니다. 현재 앤디 워홀 같은 미국 작가들의 작품이 최고 대우를 받습니다. 중국도 아티스트를 키우고 있습니다. 앞으로 문화강국인 우리나라의 아티스트를 발굴해서 해외에 소개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미대 취업률이 낮아서 미대가 있는 학교는 대학 평가 시에도 불리한 경우가 적잖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작가들을 발굴해서 해외에 소개하고, 한국 문화의 우수성도 알리면 그게 애국이 아닐까요. 제 생애에 어렵다면 자식, 손주가 대를 이어가며 ‘문화 전도사’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